뛰어난 기예와 아름다움으로 관객을 매료시키는 가부키 타테오야마(立女形;여자 주인공 역을 하는 남자 배우), 반도 타마사부로(坂東玉三郎). 그의 성장 과정부터 연극, 문학, 사람과의 “인연” 그리고 예능의 길에 관한 생각을, 과거 제자였던 연출가이자 배우인 야마모토 켄쇼(山本健翔)씨가 물었습니다.

기예(藝)란 무엇인가

기예(藝)란 마음과 영혼을 전달하기 위한 숙련된 기술일 것입니다. 말을 하는 것처럼 매끄럽게 전달되는 기술. 그 기본이 “카타(型; 대대로 계승된 기예의 전형)”입니다. 그것을 철저하게 익힘으로써 생각만으로도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 춤은 본능적인 것이었습니다. 걸을 수 있을 때부터 음악이 나오면,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는데, 자동으로 몸이 반응하여 부채나 손수건을 들고 춤을 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한 살 반쯤 때 소아마비에 걸렸고, 부모님이 요즘 말로 리허빌리테이션, 즉 재활 치료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시키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해서 일본 무용 선생님을 집에 불러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서너 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무용을 배우기 시작하게 됐습니다.

여섯 살 무렵 가부키 배우14대 모리타 칸야(守田勘弥; 1907-1975)의 제자가 되어, 일곱 살 때 첫 무대를 밟고, 열네 살 때 5대 반도 타마사부로(坂東玉三郎)라는 예명을 얻어 모리타 칸야의 양자로 맞아들여 졌습니다.

“오늘부터는 프로가 되는 거니까 지금까지의 연습 방식과는 다르게 아주 엄격해질 거야”

라는 양부의 선언과 동시에 가부키 배우가 익혀야 할 온갖 교습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자유롭게 해왔던 연습에서전문가의 기술을 익히기 위한 훈련이 시작된 것입니다.

무용, 샤미센(三味線)을 비롯한 일본 전통 악기, 다도, 꽃꽂이, 피아노……, 같은 종목을 다른 두 선생님께 배우기도했습니다. 아침 10시쯤부터 교습을 다니기 시작해 오후 5시 15분 국립 극장 상연 시간까지, 20살 무렵까지 이런 일상을보낸 것 같습니다.

20살 때부터 갑자기 바빠져서 교습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6년이란 훈련 기간은 좀 짧았습니다. 그것이 비극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짬을 내서 배우러 다녔습니다.예를 들면 기다유는 분라쿠자 선생님과, 여자 기다유 선생님께 배우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여자 기다유 선생님 댁에 동네 유지들이 드나들어서…….

“천수 이야기(天守物語)”. 이즈미 쿄카(泉鏡花; 1873-1939) 희곡. 반도 타마사부로(坂東玉三郎)의 대표작 중 하나로 1995년에는 감독과 주연을 맡으며 영화화.

문학을 생각하다

“동네 스승”이라는 말이 지금은 없어진 것 아닐까요? 옛날에는 신부 수업으로 무용, 다도, 꽃꽂이를 배우는 젊은 여성과 기다유나 민요를 배우는 남성들이 있었습니다. 신부 수업에서 여류 예능인이 탄생하거나 거기에 섞여 있던 남성이무용가가 되기도 했습니다. 동네는 민중으로부터 예능 전승자를 배출하는, 사람과 예능이 결합한 곳이었습니다.

일본어를 소리 내 읽는 즐거움이라는 것도 포함해서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요? 동네에 스승이 있었을때, 그것은 전쟁 전의 문학적인 교양이 있던 시절과도 겹쳐집니다.

제2차 대전 이후 일본 문학의 흐름은 어떤 의미에서 단절된 것은 아닐까요. 지금은 혼란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츠루야 난보쿠(鶴屋南北 ※1)도 혼돈의 시대에 살던 사람으로 문학가라 할 정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그의 언어는 일본인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선악을 보여주면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 가는, 설법이라는 의미에서의 종교적 세계관이 바탕에 있었던 것입니다.

『사쿠라히메 아즈마 분쇼』(桜姫東文章 ※2)도 선악이 혼돈된 가운데 죄를 저지르며 인과응보라는……관객은 관능적이며 그로테스크한 취향을 즐기며 설법적인 세계에 빠져듭니다.

다른 문학도 그렇습니다. 셰익스피어, 그리스 비극, 체호프. 제가 이즈미 쿄카(泉鏡花)의 작품에 몰두하는 것도  그이유 때문입니다.

안제이 바이다(Andrzej Wajda ※3)씨와 『백치』를 공연할 때도 여러 나라의 침략을 받아 온 폴란드라는 나라의 특색일지 모르지만, 바이다 씨는 어느 나라 사람과도 따뜻한 마음으로 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통해 인간이 평소에 형언할 수 없을 것 같은 공통어를 연극에서 찾아내 그 마음의 소통을 소중히 하려 했습니다.

현재 그런 “문학”을 공유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장래를 위해 다방면으로 강구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모란정”(牡丹亭 ※4)도 그런 과정에서 만났습니다. 설마 중국어로 공연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1:츠루야 난보쿠(鶴屋南北) ; 1755-1829. 에도시대 후기에 활약한 가부키 작가.
※2:『사쿠라히메 아즈마 분쇼(桜姫東文章)』; 『토카이도 요츠야 카이단(東海道四谷怪談) 』과 함께 츠루야 난보쿠의대표작.

※3:안제이 바이다(Andrzej Wajda); 1926-2016. 폴란드 출신 영화감독. 1988년 도스토옙스키작 『백치』를 무대화한반도 타마사부로 주연 『나스타샤』를 연출. 1994년에는 영화화.

※4:”모란정”(牡丹亭); 중국 명대의 극작가 탕현조(湯顕祖;1550‐1616)의 대표작. 곤극(昆劇;중국 곤산(昆山) 지역에서 유래한 전통 연극) 최고 걸작으로 불린다.

“모란정”(牡丹亭).일중 합동 제작으로 반도 타마사부로 판으로 제작된 중국 곤극. 2008년 초연.

 

동양과 서양의 차이점

서양과 일본은 매우 다릅니다. 예를 들어 드레스를 입고 있으면 허리를 구부려서 걸을 수가 없습니다. 기모노는 구부려서 걸을 수 있지만. 이것은 큰 차이점입니다. 서양은 서서 생활하고 가끔 앉습니다. 그래서 연극도 주로 서서 하고가끔 앉습니다. 일본은 앉아서 생활하고 가끔 서서 이동합니다. 연극도 그렇습니다. 이런 생활 방식 때문에 사고도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중국도 주로 서 있지만 땅에 발을 붙이고 있습니다. 중력에 거역하지 않는 것입니다. 서양은 중력을 거스르기도 합니다. 발레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동양은 “없는 것을 있다”라고 생각하는 연극입니다. 서양은 기본적으로 실존적입니다. 보이지않는 존재를 표현하는 판타지라는 것은 있지만. 배우와 관객이 없는 것을 명상하여, 있는 것으로 공감함으로써 연극적인 기쁨을 찾는 것……,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즐거움이라고 할까요? 그것이 동양 연극에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서양 작품은 어렵습니다. 완벽하게 해내려면 서양의 사상, 사생관, 종교관 등 그들의 “혼(魂)”까지 파고들 필요가 있습니다. 이 혼을 이해할 수 있다면 세부적인 수법은 크게 구애받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번역의 세계로 말하면, 글쓴이의 영혼을 파악하는 것으로, 원문을 엄밀히 번역하지 않아도 적절한 일본어로 표현함으로써 독자의 공감을 얻어낼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어에 정통해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만.

수파리(守破離)란

양부 모리타 칸야(守田勘弥)는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카타(型; 대대로 계승된 기예의 전형)”를 깬다는 것은 “카타(型)”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이지. 기본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 하면 그건  “카타(型)”가 없다는 거야”

그런  “카타(型)” 즉 기본을 철저히 익히는 것. 그것이 수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련의 단계를 나타내는 “수파리(守破離)”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守)”는 스승이나 유파의 가르침, 카타, 기술을충실히 지키고 확실하게 익히는 단계. “파(破)”는 다른 스승이나 유파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좋은 것을 받아들여  발전시키는 단계. “리(離)”는 하나의 유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확립시키는 단계. 기본은 “수(守)”로 시작해야  “파(破)”로 갈 수 있습니다. ”리(離)”로 가면 갈수록 “수(守)”가 힘을 발휘합니다.

바이다 씨는 예술은 계승과 발전이 반복되어 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계승은 이어서 전달해가는 것으로 발전 단계에서 파격적인 즉 “파(破)”라든지, 과거의 것에서 비약하여 새로운 생각이나 기법이 생겨나 “리(離)”가 되어갑니다.

이것도 수련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 수파리, 수파리라고 하면서 계승 발전, 계승 발전해 나가는 것이겠죠. 발전이 없으면 계승도 의미가 없는 것이 돼버립니다. 계승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 철학적이랄까 선문답 같습니다만.

연극에 있어서 수(守)를 수(守)답게 하는 기본은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적인 것, 즉 각본이네요. 각본을 읽어 내지 못하면 연기도 연출도 할 수 없습니다. 각본에 대한 수(守)라는 것입니다.

무용은 와카(和歌; 일본 고유 형식의 시가)입니다. 그 노래에 맞는 안무를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문학, 와카(和歌), 언어, 시 등의 전통이 단절된 지금, 수(守) 없이 파(破)도 없고, 리(離)만 있으면  “카타(型)”가 없는 것입니다. 즉 제대로 된 예능이 희박해졌습니다.

이런 시대에 기예의 길을 간다, 전한다는 것에 절망적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과정 없이 결과만 있습니다. 즉 온, 오프의 세계입니다.

편의점 같은 간편함이 나쁘다고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재료를 준비하고 조리하는 과정이 보이지 않는 반찬을 사는 것입니다. 즉, 수(守)도 파(破)도 없이 리(離)만 남아 돈만 내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신용카드가 보급되면서 현찰마저 보이지 않게 되고 있습니다. 대용량 데이터 라인만 있고 그에 대한 온 아니면오프만 있습니다.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혼을 되찾는다

길이라는 관념이 희박해지고 말았습니다. 정말 힘든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눈앞에 있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사람에게는 온 힘을 다해 전하고 싶습니다. ”인연” 입니다. 인연이 있는 것에는 최선을 다해 전달하고 싶고 인연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고동(鼓童 ※5) 단원들은 사도(佐渡)섬에 갇혀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심지가 있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힘들어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을 위해 건넬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만이 의지가 됩니다.

인간의 혼을 되찾으려면 체험을 소중히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 대인관계가 어렵다면 극장을 찾아 무대 위의 사람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체험이 적은 현대인에게는 최선의 방법일지 모릅니다.

※5:고동(鼓童) ; 반도 타마사부로가 예술 감독을 지낸 북 연주를 중심으로 하는 음악 연예 집단. 니가타(新潟)현사도(佐渡)섬을 거점으로 국내외에서 활약하고 있다.

「“아마테라스” . 일본 신화를 소재로 고동(鼓童)과의 협연으로 제작된 무용극. 2006년 초연.

반도 타마사부로坂東玉三郎)

5. 일본의 배우, 영화감독, 연출가. 가부키를 대표하는타테오야마(立女形; 여자 주인공 역을 하는 남자 배우). 수많은 역을 계승 발전 시켜 가부키의 새로운 경지를 확립. 일찍부터 모리스 베자르(1927-2007), 요요마,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를 시작으로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다채로운 협업을 전개. 영화감독·연출가로서도 투철한 미의식으로 작품세계를 구축. 2012 인간문화재 지정 이어 2013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최고위 코만도르수상

” 스승, 반도타마사부로(坂東玉三郎)” 

야마모토 켄쇼(山本健翔)

기예(藝)라고 하면 스승 반도 타마사부로.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기 시작한 것이 예능이었고 그것은 반도 타마사부로였다. 하지만 나는 가부키 배우도 아니고 재능도 없다. 그러나, 그래도 나에게 있어서, 스승과 보낸 시간이 현재의나를 있게 한 것임이  틀림없다.

스승 밑에서 수련하던 시절, 스승의 하나하나 반응으로부터 가치관과 미의식이 단련되고 길러졌다. 바로 수(守) 였던 것이다. 그 후 30년간 수파리(守破離)를 반복해 온 것이다. 이번에 오랜만에 스승의 말씀을 들으면서, 긴장과 기쁨과도 비슷한 흥분을 느꼈다. 이런 스승을 향한 마음은 데이터로는 남길 수 없는 것이다.

절망감 속에서 말씀하셨던 “인연”. 스승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에 희망을 품고 앞으로도계속 지켜보고 싶다. 무대에서의 모습, 작품과 만나는 것 또한 인연임이 틀림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