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몬 시대 사람과 함께 대륙에서 건너왔다고 전해지는 일본개는 험준한 산과 강이 많은 일본이라는 섬나라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해 왔다. 최근까지 비교적 사람에 의한 교배와 개량을 거치지 않고 강한 개체끼리 자손을 남기는 자연 진화를 이루어 왔다.
그래서 일본개는 세계적으로도 원시적 기질이 짙게 남아 있는 견종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시바견(柴犬), 키슈견(紀州犬), 시코쿠견(四国犬), 홋카이도견 (北海道犬), 카이견(甲斐犬), 아키타견(秋田犬) 6종의 일본개의 뿌리를 찾고자 한다.

카이견 애호회 제93회 전람회 종합 우량견 쿠로오(黒王)호 (사진 제공:니이즈 토요아키新津豊明 씨)

카이노쿠니산악지대를자유롭게질주한호모견

제2회는 야마나시(山梨)현 산악지대에 서식해 온 토종개 카이견을 다룬다. 최근 TV 등에서도 다루어져 인지도가 오르고 있지만, 일본개 중에서는 아직도 소수 부류일지 모른다. 하지만 1934년 아키타견(秋田犬)에 이어 2번째로 천연기념물로 등록되었다. 그 개요와 역사에 대해서 최초로 원종 카이견 보존에 힘 써온 도쿄에 있는 원랑견사(源狼犬舎)의 책임자 오오가와라 켄지(大河原堅時) 씨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야마나시현의 옛 이름인 카이(甲斐)를 그대로 붙인 카이견(甲斐犬)은 야마나시현이 원산지로 특히 아시야스(芦安) 마을, 히라바야시(平林)마을, 니시야마(西山)마을, 카미쿠이시키(上九一色)마을, 미야모토(宮本)마을, 니시호(西保) 마을 등 발견 당시 교통이 매우 블편했던 산간벽지에 서식했다. 주로 영양과 곰, 지역에 따라서는 멧돼지 등의 사냥에 애용했다. 그 특징은 야성미 넘치는 호모(虎毛;흑밤색 얼룩무늬 털)이며,  흑호(黒虎), 중호(中虎), 적호(赤虎) 등 세 종류가 있어 산야에서는 보호색으로 유용하다. 또 일본개 중에서도 비절(飛節;  발뒤꿈치에 해당하는 부분)이 발달하고 남알프스 인근 지역 사육자들에게는 「바위굴」이라 불리던 엄지발가락에 해당하는 로소(狼爪)도 잘 이용해 보통 개는 오를 수 없는 암벽이나 절벽도 뛰어오른다.

크기는 중형견으로 나뉘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일본개 중에서는 시바견 다음 크기로, 보존 운동이 높아지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소형이라 하기에는 크고, 중형이라 하기에는 작다’라고 평가됐다. 현재의 카이견 애호회 표준체고는 40~50cm이지만, 이전에는 39.5cm~45.5cm 정도였다고 한다.

이 정도 크기로 곰이나 멧돼지와 싸울 수 있겠냐고 생각하지만, 카이견은 특필할 만큼 머리와 기질이 뛰어나다. 사냥개는 사냥감을 보면 흥분해서 덤비다가 오히려 멧돼지 이빨이나 곰 발톱에 당하는 경우가 있지만 카이견은 깊게 쫓지 않는다. 사냥감을 쫓아 도망가려고 하면 다리를 물어뜯어나, 주인이 도착할 때까지 짖어 사냥감의 주의를 끄는 사이 사냥꾼이 조용히 다가와 총을 쏘게 한다.

커다란 수사슴을 향해 짖어 주의를 끄는 카이견. 자신보다 훨씬 큰 사냥감에도 겁내지 않고 주인이 올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킨다. (사진 제공: 신슈信州우에다上田 카이견 다이몬견사大門犬舎 다이몬타케시大門武호)

20세기 전반 코바야시 쇼오키치 등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다

이렇게 산속에서만 활약했던 사냥꾼 비장의 개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30년 야마나시현의 수의사로  고후(甲府)동물원 원장을 지낸 코바야시 쇼오키치(小林承吉)  씨가 애견 전문잡지에 보낸 기고문에서였다. 코바야시 씨는 1924년 왕진 나간 산촌에서 호모개를 보고 이미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 후 요코하마에서 부임해 온 검사 아다치 타스케(安達太助) 씨도 1931년에 고후(甲府)시중에서 호모개를 발견하고 그 뛰어남에 반해 사방을 찾아다니던 중에 지인의 소개로 아시야스(芦安)마을의 사냥꾼으로부터 흑호모(黒虎毛)의 카이개를 입수. 같은 해 가을에는 카이견 애호회를 발족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다치 씨가 사냥꾼에게서 입수한 카이견의 모습과 성품을 참고로, 카이견 애호회 설립 취지서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일대일주(一代一主), 주인에게는 절대 충성하고 낯선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으며, 주인의 위급할 때는 적을 향해 몸을 던져 죽음도 불사한다. 삼각형의 쫑긋 선 귀와 말린 꼬리, 마치 개가 서 있는 모양을 한 종이로 만든 장난감 같은 작은 체형으로, 그 체형과 기질에서 소박한 옛 무사의 모습을 방불케 하기에 충분하다”

일본개에 대해서 ‘일대일주(一代一主)’의 한 주인만 따르는 기질이 자주 언급된다. 특히 카이견은 그 기질이 강해 주인이 죽으면 물도 음식도 받아먹지 않고 뒤를 쫓아가듯 죽어버렸다거나, 산중에서 조난한 주인 시신 옆에서 며칠씩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카이견 발견의 아버지 코바야시 쇼오키치(小林承吉) 씨와 카이견과 만주늑대를 교배한  ‘신랑견(新狼犬)’. 고후(甲府)동물원 원장이기도 했던 코바야시 씨는 당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개와 늑대 교배에 성공. 다양한 견종을 시험했지만, 늑대를 누르고 교배하게 된 것은 카이견뿐이었다고 한다.(사진 제공:오오가와라 켄지大河原堅時씨

조상은 산개인가? 원산지 중 한 곳을 방문하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최근의 ‘사람과 함께 살아 온’ 카이견의 역사를 따라가 보았다. 그러나 애초에 이 개가 어디서 왔느냐는 얘기가 나오면 일본의 남알프스 산맥을 중심으로 한 산악지대에 서식한 산개 혹은 산개와 집에서 키우는 개의 교배종이라고 생각된다.

산개 새끼를 산속에서 주워오거나 발정기의 암캐를 산속에 묶어놓고 산개와  교배시켜 얻은 새끼를 사냥꾼이 기른 것이 시초로(그러나 짝짓기가 끝난 후에 산개가 암캐를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어 실제로 이 방법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원래는 일본늑대 등과 같은 야생동물의 혈통을 강하게 이어받는 견종인 듯하다. 이러한 카이견의 뿌리를 찾아, 아다치 타스케(安達太助) 씨 등이 애호회를 발족할 무렵 우수한 카이견이 많이 있었다는 아시야스(芦安) 마을을 방문해 보았다.

산골짜기 사이를 누비듯이 흐르는 미다이(御勅使)강을 따라 인가와 온천이 점재해 있는 아시야스(芦安) 마을. 바로 그리로 다가오는 듯한 산들은 예전에 나는 듯이 달려가 일본 산양을 쫓던 카이견의 고향이다

취재에 응해 준「카이개의 고향 아시야스」를 운영하는 이이 카즈미(伊井和美) 씨. 예전에는 한 집에 한 마리라고 할 정도로 카이견이 있던 마을이지만, 마을 사람들의 주요 수렵 대상인 일본 산양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마을에 서서히 카이견이 줄어들었다고 한다(기묘하게도 일본 산양과 카이견은 같은 1934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카이견의 발상지에 카이견이 사라지지는 것은 쓸쓸한 일입니다. 그래서 1985년경에 아시야스 마을에 카이견 보존회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것도 2003년경에는 시들해지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부터 개인적으로 카이견을 기르고 있습니다만, 완전히 이 개의 매력에 빠져 카이견의 고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카이견의 고향 아시야스」에는 8마리의 카이견이 있다. 본래는 ‘일대일주(一代一主)’ 성향이 강하고 신중하며 좀처럼 사람에게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 않는 카이견이지만, 환경이나 키우는 방법에 따라서는 우호적인 성격으로도 자란다. 이이(伊井) 씨의 카이견들은 ‘카이견 대사(大使)’답게 대부분 친절했다.

개를 보여주시는 이이 씨에게 과거의 카이견을 아는지 물어봤더니 “옛날에는 이 근처에 들개가 집 툇마루 밑 등에 새끼를 낳고 가는 일이 있어서, 그 강아지를 기르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라는 예상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이 씨의 숙부님도 그렇게 해서 손에 넣은 카이견을 키운 적이 있었다고 한다.

“강아지 주제에 전혀 주인을 따르지 않아 목줄조차 달지 못했대요. 어쩔 수 없이 수의사에게 데려가 마취를 하고 목줄을 채웠대요”

마치 야생동물 같았던 에피소드에 마음이 설레었다. 그런 야성미 넘치는 카이견이 80여 년 전만 해도 분명히 이 땅을 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금도 아시야스 마을에서 그 먼 후손을 통해 볼 수 있다.

「「카이견의 고향 아시야스」는 견학이나 강아지 양도 상담에도 응하고 있다. 이이(伊井) 씨가 어루만져 웃는 얼굴을 보이고 있는 카이견은 이벤트 등에서 카이견 PR에 활약하고 있는 진(神)호 1살.

2019년150회 전람회를맞이하여 카이견의 미래를묻는다

2019년 10월 27일 남알프스시에서 처음으로 카이견 애호회와 시가 공동 개최한 ‘카이견 페스티벌’이 열렸다. 카이견 애호회 전람회 150회를 기념해 대대적으로 개최된 것으로, 일반 전람회에 관광협회 홍보부스와 포장마차도 출점해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이런 가운데 카이견 애호회를 취재할 기회를 얻어 요코모리 테루오(横森照雄) 회장과 니이즈 토요아키(新津豊明) 심사원에게 카이견의 매력과 앞으로의 카이견에 관해 물어보았다.

전람회에서는 미성견(未成犬), 장견(壮犬), 성견(成犬)의 암컷과 수컷 부문에서 각각 카이견의 모습과 기질을 겨룬다. 최근 몇 년간은 120~130마리 정도가 참가했지만, 이번은 기념회여서 177마리가 참가했다. 왼쪽 아래는 종합 우승을 다툰 후우마노토라지로(風真乃虎侍狼)호(왼쪽)와 아야노하루카(彩の春華)호. 오른쪽 아래는 이야기를 들려준 제7대 회장 요코모리 테루오(横森照雄) 씨.

카이견이 태어나고 자란 야마나시현에서 오랫동안 명견을 접한 요코모리 회장과 니이즈 심사원. 카이견의 특징과 매력에 대해 “역시 단연 똑똑하고 속도감과 점프력이 뛰어난 신체 능력”이라고 한다. 그 예로“밭 등에서 바구니나 물건을 두고 집에 잠깐 갔다 오고 싶을 때, 주인이 카이견에게 ‘지켜라’고 명하면, 그 옆에서 계속 짐을 지키고 있는다” “180cm 정도 높이의 담도 거의 도움닫기 없이 그 자리에서 뛰어오른다” 등을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것은 “카이견은 집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주인을 도우려는 듯이 움직인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사냥할 때는 주인과 딱 호흡을 맞추는 사냥견으로, 집안에서는 사람을 임기응변으로 지키는 애완견이다. 시대나 환경에 맞게 역할과 성격이 달라졌지만, 일대일주(一代一主)로 주인 지키는 것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 카이견은 야마나시현에서 지켜 왔습니다만, 앞으로는 다른 지역 사람들과 더 협력하여 세상에 알려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요코모리 회장은 말한다.

실은 최근까지 카이견은 야마나시현으로부터 외부로 잘 나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발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그 뛰어난 능력과 희귀한 호모 때문에 외지에서 많은 개장사가 와서 카이견을 마을에서 거의 전멸시킬 정도로 가지고 가 버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본래의 특징을 속여 야마나시로부터 카이견이 유출되지 않게 한 적도 있다고 하는 비장의 개였던 시절이 있었다.

애호회 회원과 애견가의 노력으로 카이견을 기르는 사람의 수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애호회에 등록된 카이견은 현재 2만여 마리라고 하나, 아직도 일본에서 길러지는 개의  마리 수로는 적다.

“카이견은 기질이 거칠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개로, 파수견이나  애완견으로도 뛰어납니다. 한 번 키우면 카이견 이외는 생각할 수 없게 되는 사람도 많아요”라는 니이즈 심사원.

이는 많은 카이견 주인도 동의한다. “머리가 너무 좋아서 장난도 예상을 뛰어넘어 개와 인간이 지혜 겨루기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말과 마음이 통하는 개도 없다”고.

약 100년 전 선조들이 야마나시 산간에서 발견했을 때의 강한 야생성이 남아 있으면서도 사람과 공존한 희귀한 산개의 후손. 카이견은 머리가 좋고 뛰어난 신체 능력 때문에 키우려는 견주는 나름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본래의 자질과 특성을 알고 함께 지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단짝이 될 것이다.

*취재협력: 카이견 애호회 (055-226-7569)  카이견의 고향 아시야스 (090-1098-9823) /원랑견사(源狼犬舎) /오오가와라 켄지(大河原堅時) 씨芦安(090-1098-9823)/源狼犬舎・大河原堅時氏